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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충북 단양. 단양은 왜 신단양으로 불렸을까?

by 소소한 소리 2019.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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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은 내가 현재 살고있는 곳이자 고향이다. 어렸을때부터 살아온 곳이었지만 현재까지 계속된 관광사업과 환경 개선으로 관광객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단양은 옛날에 어떤 곳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과연 어떤 곳이었으며 현재까지 어떻게 발전이 이뤄졌을까?

단양은 옛 유적지와 유물들이 많은 지역이다. 주먹도끼와 같은 선사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수양개박물관, 진흥왕의 순수비, 온달산성 등등 다양한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어렸을때 단양을 그냥 단양이라고 부르지 않고 엄마가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는 신단양이야. 구단양은 단성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있는데 거긴 여기서 10분에서 15분거리에 있어"라고 종종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왜 신단양라고 불렸던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원래는 구단양이라고 불렸던 단양. 즉 단성 지역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2년도에 역대급으로 큰 홍수가 닥쳤다. 각 종 건물이며 사물, 동물들이 떠내려 갔다. 물론 인명피해도 컸다. 9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도로나 하천이 물에 다 잠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해는 이때에만 일어나고 그 이후에는 이와같은 큰 재해가 발생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78년도부터 81년까지 4년동안 연속해서 재해가 발생했으며 90년도에는 매포의 상수도 둑이 터지고 이후 장마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맘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구단양은 장마나 홍수와 같은 재해가 매해 일어나고 있었으며 계속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종합개발게획에 의거해 4대강 개발사업이 추진되었고 충주댐 건설이나 신단양 이주 계획, 수몰이주민 파악, 재해로 인한 피해액 조사 및 보상 마련 등등 여러 방면을 파악하고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종으로 고수동굴이나 도담삼봉과 같은 관광지와 인접하면서도 시멘트 공장이 있는 매포지역과 인접한 곳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1970~80년대).

이후 단양은 관광지나 SOC 확충 등등 각 종 체계를 갖추려 노력하였으며 2019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발전이 이뤄지고 있고 현재까지도 계속 관광지나 관광명소, 게스트하우스, 시장 활성화와 같이 관광지역으로써 입지를 굳히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단양의 관광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그런데 너무 많아 이걸 따로 포스팅으로 올려야 될 것 같다. 우선 단양8경이라고 불리는 관광지[옥순봉,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 만천하 스카이워크, 아쿠아리움, 고수동굴, 온달산성, 구인사 등등이 있다. 이걸 다 적으려면 따로 포스팅을 올려야 될 것 같다. 그럼 다음 게시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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